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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Bucket List (5) : 백기덕 (상학과 5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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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4-12-06 20:32 조회3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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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Bucket List (5)

鷺鄕 백기덕
(상학과 58학번)

 

내 나이 이제 산수(傘壽)도 한참 지나 여든다섯으로 인생을 졸업 해도 괜찮을 나이라는 졸수(卒壽)를 향해 가는 처지로 옛날 같았으면 진즉에 북망산천(北邙山川)에 누워 있을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좋아 백세인생이라고들 하여 여전히 맨해튼 거리를 누비고 있지만 이제 나도 가난한 무명 화가 베어만 노인이 담쟁이에 그려 준 몇 장 남지 않은 잎새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신세로 염라대왕이 언제 부를 줄 모르는 사잣밥을 목에 매달고 다니는 형편이니 마지막 잎새 떨어지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 서둘러 길을 나서기로 했다.

 

 

담쟁이넝쿨이 기어오르는 주철건물의 가난한 예술인 동네 그리니치 마을의 마지막 잎새와 헤어져 소호(SoHo)의 백남준 종형(從兄)을 만나러 간다. 아니 낯설고 먼 이국땅에서 만나 본 적도 없는 종씨(宗氏)형을 만나러 간다고?

 

 

백씨는 원래 수원(水原)백씨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선산(善山)백씨이다.

내가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구미 근처 선산 말이다.

그때만 해도 선산이 구미보다 컷던 모양이다. 선산에 살던 백씨 3형제가 이북으로 올라가 자손을 번성시킨 게 선산백씨라고 한다. 은행에 다닐 때 같은 종씨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난 지금껏 이남 땅에서 우리 선산백씨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래 나도 수원백씨라 하고 지내고 있다. 그런데 낯선 먼 미국 땅 소호(SoHo)에서 종씨 형제를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반가우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그의 인생 대부분을 살았던 장소가 바로 이곳 소호였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고 소호라는 동네가 가난한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허름한 뉴욕의 거리로 돈은 없지만 미래를 향한 꿈과 낭만이 존재했던 순수한 아티스트들의 삶터가 바로 이곳 소호라는 두 글자 속에 깃들여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백남준이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맨해튼에 도착했던 1964년을 기점으로 그의 전시회가 거듭 대성공을 거두면서 죽을 때까지 정착하여 예술혼을 불살랐던 공간이 바로 이곳 소호였다는 것이다.

당시 소호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했던 팝 아티스트 리히텐 슈타인(1923~1997), 앤디 워홀(1928~1987) 같은 미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비디오 아트라는 독보적인 영역에서 세계적 아티스트로 우뚝 섰던 백남준. 그는 자유분방한 기질로 한국적 파격미를 유럽인의 우상인 피아노를 깨부수는 등의 행위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TV Buddha"라고 불상을 두고, 그 앞에 CCTV를 설치 명상하는 부처가 TV를 통해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굉장히 묘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부처와 TV를 만나게 함으로서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물질이 만나 비디오아트를 낳은 앞서가는 예술가였다.

이처럼 부처의 가출과 백남준의 가출을 같은 것이었다.

백남준은 호랑이의 강하지만 부드러울 수 있는 기질을 빼닮았다. 그는 우리나라를 문화국으로 세우고 신바람을 다시 회복시켜준 우리 시대의 호랑이다. 한마디로 세상에 기()를 넣어주는 사람이었다. 바로 내가 이런 백씨야 하고 잘난 척 우쭐거리며 소호거리를 걸었다.

 

 

하긴 이 거리에 나도 인연은 있다.

지금 워싱톤 백악관 근처 그 유명한 보석상 티파니에 근무하고 있는 큰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이 거리 어딘 가에 가게를 차렸었는데세월이 많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은 이 가난한 애비가 못 차려준 다이아반지를 원없이 보려니 하며 마음을 달랠 뿐이다.

 

 

뉴욕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에도 서호란 이름은 자주 들어본 기억은 있다. 수원에 있는 철새도래지 서호공원(西湖公園)

말이다. 그런데 뉴욕에도 서호가 있다니!

소호(SoHo)는 뉴욕시가 역사지역(Historic District)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맨해튼의 남쪽 지역으로 샤넬, 루이비통, 프라다등 명품 브랜드 매장이 밀집해 있어 뉴욕의 패션 메카로 패션 피풀들의 핫 플레이스 이다 소호라는 이름은 휴스턴거리의 남쪽이라는 (SOuth of HOuston Street)’에서 따왔으며 런던의 소호를 흉내 낸 이름으로 서울의 가로수길과 인사동길이 합한 거리이지 싶다.

 

 

거리마다 눈요깃거리와 먹거리가 셀 수없이 많아 관광과 쇼핑. 문화를 주도하는 지역으로서뿐만 아니라 주거지역으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90년대 우리 젊은이들을 울린 영화로 죽은 후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혼백과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사랑과 영혼(원제 Ghost 유령)‘의 배경이기도 한 동내이기도 하다.

 

 

은행원인 '(Sam)'과 도예가인 '몰리(Molly)'는 사랑하는 사이로 어느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샘은 죽게 되나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몰리의 곁을 맴돈다. 하지만 육체가 없는 샘의 존재를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는 데

영매사의 도움을 받게 된 샘은 그녀에게 사랑을 전하는데

세상 어디에 있든 오직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사랑과 영혼의 주제가 ‘Unchained Melody’

 

 

, 나의 사랑, 나의 그대

당신의 손길을 바라고 있어요

길고 외로운 시간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러요

시간은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죠

아직도 그대는 나의 연인인가요?

당신의 사랑이 필요 해요

 

 

외로운 강은 흘러요

바다로, 바다로 흘러가요

바다의 넓은 품으로 흘러가죠

외로운 강이 한숨을 쉬며

 

 

기다려줘, 나를 기다려줘

집으로 돌아갈께요, 기다려줘요.

샘이 몰리를 뒤에서 껴안고 물레을 돌리며 도자기를 빚는 순간 흘러나오는 이 애절한 노래가 우리들을 얼마나 많이 울렸던가! 샘은 영매사 오다 메이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몰리와 이별의 키스를 나눈다. 샘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몰리는 나도! (Ditto)’라고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샘은 뒤돌아 천국으로 사라진다. 그래 나도 은행원이었던 샘처럼 몸은 소호를 떠나지만 내 마음은 항상 이 거리 소호를 떠돌 거야 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소호를 떠난다.

 

 

가까운 거리에 리틀 이태리(Little Italy )와 차이나타운이 있더라. 리틀 이태리의 경우 19세기 후반부터 이태리 이민 들이 모여 살아 한때 큰 동내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피자와 파스타 가게 몇 곳이 명맥을 유지할 뿐 흔히 보는 백인 동네가 되어 길 입구에 리틀 이태리라고 쓴 붉은 철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 리틀 이태리는 본 것으로 하고 길 건너 차이나 타운으로 간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내 초등시절 목 놓아 부르던 행진곡이다.

3년여의 동족상쟁(同族相爭)의 전쟁도 끝나고 내 고향으로 돌아가 할아바이와 할마이 산소도 찾아뵙고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남북통일의 절호의 순간에 중공군이 떼 지어 밀고 내려와 우리 조국을 두 토막으로 나눈 철천지원수 나라 (徹天之怨讐之國) 아니던가!

차이나는 무찌르고 쳐부실 대상 일 번 이었는데

 

 

우리 주님 원수를 사랑하라하셨으니 내 어찌 모른 척 하겠나! 또 우리 속담에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몇천 년을 중국이라는 큰 나라 곁에 바짝 붙어서 숨 죽이고 살아온 우리 자그마한 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며 차이나 거리에 들어선다.

길 하나 건너니 중국 특유의 빨강 노랑 한문 간판이며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키 작고 코 납작하여 나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걸을 수 있는 아시안 거리로 마치 서울의 한 모퉁이 같은 거리 풍경이다. 이곳 만하탄 최남단 차이나타운은 19세기 중반 미 대륙 횡단열차 공사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노동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동네로 지금은 미국 최대의 중국계 미국인 거주지가 된 곳이다. 온갖 아시아 식료품과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는가 하면 딤섬 요리(Dim Sum)와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 등 다양한 중국 요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먹자골목 같은 동네이다.

 

 

저 멀리 간판이 보이네요.

차이나타운에 오면 항상 들리던 合記飯店(Hop Kee 레스트랑).

지하에 있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50년 전 그대로이더라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정말 중국사람들 정말 지독합디다.

이렇게 지하로 내려갑니다. 식당은 지하에 있어요.

메뉴판에 한글도 있고요. 얼마나 한국분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50년 전 먼저와 본 선배들 덕에 와본 식당인데 이 집 게볶음(Crab)요리 먹으러 차이나 타운에 오곤 했지요. 우리가 흔히 아는 꽃게가 아니고 조그만 베이비 크랩(Baby Crab)인데 통째로 볶은 게요리로 50여 년이 지났지만 어릴적 구운 메뚜기 맛을 잊지 못하듯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왔답니다.

 

 

늘 시켜 먹던 작은 게 볶음(Crab)을 통째로 아그작 아그작 먹던 추억을 잊지 못하여 이곳에 왔지만 멀리서 간판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어야 하는데 나 혼자 먹을 수 없기에 지나가는 중국 여인에게 식당 간판 앞에서 사진 한 장 부탁한게 전부였다네요.

죽기 전에 꼭 한번 먹었어야 하는데

 

 

이제 서둘러 뉴저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이나타운을 나와 Penn 스테이숀에 돌아와 뉴저지행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더라.

맨하탄 먼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못 볼 맨하탄 모습에 가슴이 아리더라.

우리집 담벼락에 떨어지지 않는 담쟁이넝쿨 잎새 하나 그려 줄 사람 어디있소 하고 소리쳐 불러보고 싶은 날이 저믈고 있더라.

 

 

서둘러 집에 돌아오니 학교에 출근했던 딸도 돌아와 있고

하루 종일 어딜 그리 싸다니다 이제 돌아왔냐는 할멍 한테

쥐어박히지 않은게 다행이다 싶었지요.

내가 누구던가!

바람부는 대로 구름처럼 떠도는 방랑식객 백삿갓 아니던가!



평생 여가 없어 이름난 이곳 못 오다가



흰머리가 성성한 오늘에서야 안양루에 올랐네



강산은 그림처럼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초처럼 낮밤으로 물 위에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들은 말 타고 홀연히 내달려 온 듯



무한한 우주 속에 내 한 몸 오리 되어 헤엄치는 듯 하네.

 

백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빼어난 경치 구경할 수 있을까.

 

세월은 무정하여라, 나는 벌써 늙어 있구나.

 

천년고찰 부석사(浮石寺)에서


金笠
김삿갓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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