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8월7일 [權泰鳴칼럼] 滅絶危機에 처한 日本의 아이누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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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8-07 09:06 조회15회 댓글0건본문
2026년8월7일[權泰鳴칼럼]滅絶危機에 처한日本의 아이누族

지금의北海道인 에조찌(蝦夷地)에 살았던 아이누族은1868년前까지만 해도 고유문화를 유지해 왔으나1869년明治政府가 개척사(開拓使)를 설치하고 이름을北海道로 개칭한 후 실시한 차별정책으로種族의 정체성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그 뒤 아이누文化時代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明治政府는1871년 새로운戶籍法을 만들어 아이누族을日本의平民에 편입시킨후 그때까지 내려오던 그들의 모든 독자적인風習과言語사용을 금지하고日本語를 사용케 했다.또한創氏改名을 단행하고 강압적인日本人同化政策을 펴 아이누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기 시작했다.이어 아이누의呼稱도‘구토인(舊土人)’으로 바꾸고1986년에는日本單一民族國家論을 발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아이누族은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1400년까지北海道는 아이누族의 땅이었다.

(萱野茂)

아이누族으로서는 유일하게日本參議員을 지낸‘’가야노 시게루‘(萱野茂)씨는 그가 쓴‘アイヌの碑(아이누의 비석)’에서“아이누는 자신의文化와言語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明治이후近代日本이同化政策이라는美名아래 먼저國土를 빼앗고文化를 파괴하고言語를 박탈해 버린 것이다.이 지구상에 몇만년이나 이어진 아이누의文化와言語를 불과1백년도 채안되어根絶시켜버렸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아이누人의 이름은日本人과 완전히 달랐지만 지금은日本人과 같아졌다.아이누人은 본래姓은 없이 이름뿐이었는데明治政府 初期인1872년前後 日本이戶籍을 만들면서 특히 아이누人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姓을 부여했기 때문에 한家族이면서도 거주지가 달라 다른姓을 갖게 되고 반대로血緣과 상관없이 같은姓을 부여받은 경우도 발생하게 되었다.

아이누族은北海道외에 사할린,쿠릴열도 등지에도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日本東北地方은9世紀까지 그들이 지배한 땅이었다.아이누族의日本定着時期에 관해서는定說이 없으나後期舊石器時代인 조몬시대(繩文時代)로 보는 게 대표적인說이다.이繩文人이 바로 아이누族이며 이들이日本의先住民이라는 주장이다.저명한 인류학자인‘도리이 류조’(鳥居龍藏)씨는繩文人이 바로 아이누族으로日本의先住民이며 이들은 야요이시대(彌生時代)에中國東北地方과韓半島에서 건너와 정착한 집단인固有日本人에 의해北海道로 밀려났다고 주장하고 있다.아이누의 호칭인 에조(蝦夷)또는 에미시,에비스는 경멸의 뜻을 담고 있다.한편 아이누는固有日本人을 샤모(和人)라고 불렀다.北海道로 밀려난 아이누族은 줄곧 평화롭게 살았으나15世紀중엽 샤모의北海道진출이 늘어나면서 두種族사이에 충돌이 잦게 되었다.

샤모의 지도자였던‘다케다 노부히로’(武田信宏)는당시日本을 통일한‘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부터 에조도주(島主)로 임명되었으며 그의5대손인 다케다 노부히로는姓을 마쓰마에(松前)으로 바꾸고1604년江戶의幕府로부터 독립된 번(藩)으로 인정받았다.松前藩의 차별정책에 항거하여1669년 봉기한 아이누族은松前藩에 패배했으며 절대복종의 약정을 맺고松前藩예속되고 말았다.이보다 앞선8世紀에도當時나라(奈良)朝廷은 군대를 파견하여 몇차례에 걸쳐東北地方의 에조정벌에 나선 일이 있다.당시 에조정벌을 위해東北地方에 수령으로 임명된 장수는百濟系 渡來人이었다. 752년 첫 정벌 당시의 수령은百濟 義慈王의5代孫인 경복(敬福)이었으며 뒤이은797년討伐때도 같은百濟渡來人 後孫인 사카노우에노다무라마로(坂上田村呂)가 사령관을 맡았다.

人間을 뜻하는 아이누란 말이 현재日本에서는 차별적인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아이누族들은 스스로 친척 또는 동포라는 의미를 가진‘우타리’라고 부른다.그들은1961년北海道아이누協會를北海道우타리協會로 명칭을 변경했으며1980년에는關東地方우타리협회도發足시켰다.현재北海道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누族은2만3천명선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아이누族은 차별이 자녀들에게 미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신분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많아 정확한 통계집계가 어려운 실정이며 실제로는20만명 전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최근 들어日本政府當局도 아이누문화진흥법의 제정과 과거의 차별조치에 대한再考등 아이누族의 지위향상에 관해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다.현재北海道에는地名과山,江등에4만5천여개의 아이누이름이 남아 있으며 삿포로(札幌),오타루(小樽)_,무로란(室蘭),노보리베쓰(登別)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Nibutani)
아이누族의基源에 대해셔는 아프리카 흑인설,코카소이드설,대양주인종설,古아시아민族설,몽골로이드설 등이 있다.이중 몽골로이드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이 집단에는蒙古인,韓國人,日本本土人,오키나와인,티베트인 등이 포함된다.몽골로이드 중에서도 수만년전인舊石器時代에日本에 정착한 일부 조몬인(繩文人)인중에서도 혼혈되지 않고 순수한 혈통을 유지한繩文人이 아이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아이누에 대한日本人의 차별대우는 그들이 완전한日本사람이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871년부터 아이누族이日本의平民에 편입되면서 법적으로는 완전한日本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1869년明治政府初期부터 많은本土日本人들이北海道로 몰려가면서 아이누人들은 그들의 토지와 생산수단을 잃게 되었고 일상생활에서도小數種族으로서 차별을 받게 되었다.현재北海道에는 세 곳에서 아이누의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다.남쪽의 니부다니(二風谷)마을과 시라오이(白老)마을에 있는 포로토 고탄 민속촌,그리고 쿠시로(釧路)북쪽 아칸호(阿寒湖)반에 위치한北海道최대의 아이누 마을등이다.
니부다니는 예로부터‘아이누의聖地’로 불릴 정도로 아이누문화의中心地이고日本참의원을 지낸 아이누지도자‘가야노 시게루’의 고향이기도 하다.니부다니에는 갈대로 지붕을 덮은 아이누의 옛 가옥이 몇 채 복원되어 있고 가야노씨가 세운Nibutani아이누문화자료관이 있을 뿐 아이누의 옛 흔적은 별로 눈에 띄지 않은 평범한日本농촌마을이다.마을이 작지 않았으나 오후 시간인데도 사람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다.자료관직원은 관광객은 거의 없고 아이누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끔 들른다고 했다.자료관에는 수천 점에 이르는 아이누族의 생활도구와 도서 그리고 영상 및 사진자료가 보관되어 있고 주변에 아이누의 전통가옥을 비롯한 혈거주택,곡물저장창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Nibutani아이누문화자료관은日本國家重要民俗文化財로 지정되어있다. ‘가야노 시게루’(萱野茂)씨는 어려서 할머니로부터 아이누 전설을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다.그는 그의‘아이누의 비’라는 책에서 할아버지가 마쓰마에번(松前藩)영주의 농장으로 끌려가 노예처럼 학대를 받으며 노역에 시달렸고 연어를 몰래 잡았다해서 체포되었다는 얘기를 할머니로부터 듣고 어린 마음에도 한없는 분노를 느끼며 자랐다고 쓰고 있다.아이누의 혼을 이어가려고 평생을 바친 그는 이름난作家인‘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賞’을 받기도 했으며 사재를 털어‘Nibutani아이누문화자료관’을 세워 아이누族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Nibutani(二風谷)의 서쪽 쓰가루만(津輕灣)에 인접한 시라오이(白老)에는 재현해 놓은 아이누의 전통가옥과 박물관이 있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치세’라고 부르는 아이누의 전통가옥5채가 줄지어 서있고 옆으로 아이누族이 가장 신성시하는 곰 사육장과 제단,식량창고,그리고 가운데에 현대식건물인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6평 정도인 아이누 가옥은 사방이 경사진 지붕과 벽이 모두 갈대나 자작나무 또는 소나무 껍질로 되어있다.아이누는 보통 연어가 올라오는 강이나 호수 옆에 모여 살았는데 한 마을이 평균4-7호로 이루어졌으며10호가 넘으면 분리하여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집 모양은 동서로 긴 구조로 되어있고 사람이 출입하는 서쪽 문과 신(神)이 다니는 동쪽 문과 햇볕이 들어오는 남쪽 문 등3개의 문이 있다.
아이누族의 박물관 겸 마을인‘포로토코탄’은 입구에 검은색 아이누傳統衣裳을 입은10m정도 크기의 아이누촌장의 목상이 우뚝 서있으며 박물관 옆에는 아이누 개와 곰을 기르고 있다.박물관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아이누의 전통춤과 노래가 시간 따라 공연된다.아이누의 전통춤과 노래는 모두 기본적으로 곰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이오만테(Iomante)라고 불리는 의식으로 집약되어 있다.아이누는 곰을 특별한 힘을 가진 성스러운 동물로 보고2-3년간 사육한 후 죽여 그 영혼을 다시 하늘나라로 되돌려 보내는 의식을 치르며 이 때 의식의 과정마다 춤과 노래가 곁들어진다.이오만테 의식은 유라시아내륙수렵民族의 전형적인 문화행사로 주로 겨울에 치러진다.
이러한 동물과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새나 기타 동물의 우는 소리나 신음소리 등을 모방한 의성(擬聲)과 동물의 몸짓을 흉내 내는 주술이나 노래 또는 춤 등이 모두 한데 섞여 표현된다.특히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는1인칭서술의‘카무이유카라(自然神謠)’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물의 울음소리나 동물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의 의성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20여분간 진행된‘이오만테’의 전통무용은 단순하면서도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했다.고저가 거의 없이 편안한 음정으로 반복되는 노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특히 아기를 안고 부르는 어머니의 자장가는 자장 자장 우리아기…..하는 우리나라의 자장가와 흡사했다.또한 입에 물고 손으로 튕기는 작은 목재 악기인 뭇쿠리(口琴)의 음색은 청아하면서도 강한 탄력을 느끼게 했다. ‘이오만테’는日本의國家重要無形民族文化財로 지정되어 있다.
어느 나라나 원주민의 의상은 각기 특색을 띠고 있지만 아이누族의 전통의상은 우아하고 아름다움이 돋보인다.아이누衣裳은 동물가죽에서부터 나무의 속껍질을 다듬은 수피(樹皮)와 풀(草),물고기 껍질 등 그 소재가 다양하다.박물관에 이들 재료로 지은 옷이 여러 벌 전시되어있다.지금은 이러한 재료로 옷을 만들지 않고 있으며 박물관에 전시된건 몇백년이 넘은 것이었다.아이누族의 옷은 남녀 구분 없이 여러 가지 원색의 자수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기하학적인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北海道동쪽太平洋沿岸 港口인 쿠시로(釧路)에서 북쪽으로70여km거리인넓은 아칸호(阿寒湖)의 호반에北海道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아이누마을인 코탄이 있다.현재 백여명의 아이누 원주민이 살고 있다.아이누 코탄 중앙도로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30여 개의 기념품가게에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곰과 보호 새로 지정되어있는 부엉이를 비롯하여 나무로 정교하게 깎은Smartphone Case까지 온갖 목각제품이 가게마다 가득했다.아이누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아이누語講座가 열리며劇場에서는 학춤 등과 함께 아이누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美國의Indian이나Canada原住民은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넓은 땅까지 보호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반해 아이누族은 본격적인 저항운동 한번 없이日本에 재산을 몰수당하고言語를 잃고日本이름으로創氏改名을 당하는 등種族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1869년北海道개척사절단고문으로北海道에 파견되었던美農務省의Horace Capron씨는 그가 낸‘에조와 에도(蝦夷と江戶)’라는報告書에서 아이누人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평화를 사랑하며 무저항주의자이고 무기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아이누 말은 일부 노인들만 가능할 뿐 지금은 가정에서도 모두日本語만 사용되며 어린이들은外國語처럼 어렵고 차별도 두려워 수천년 넘게 이어져 온 자기 말을 배우기 싫어해消滅위기에 처해 있다. <끝>
2013년8월, 權泰鳴 作成, 2026-08-07,서울商大58會 傳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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