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7월5일 흘러간 노래 1941년 『船艙』을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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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7-05 08:34 조회2회 댓글0건본문
2026년7월5일 흘러간 노래1941년『船艙』을 재조명한다

고운봉(高雲峰)(1920년~ 2001)은 일제강점기와 우리나라의 트로트 가수.충남 예산 출생이다. 1938년 예산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1940년에는 오케레코드로 옮겨, 1941년에 발표한 조명암 작사,김해송 작곡의 노래〈선창〉이 공전의 인기를 기록하였다.종전후 일본에 건너갔다가, 1958년에 귀국,대표작 중 하나인〈명동블루스〉를 발표하였다. 2000년에 고향인 예산 덕산온천에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노래비 제막식에서〈선창〉을 부르는 등 말년까지도 활동을 계속했다. 2001년,노환에 따른 뇌경색으로 인해 향년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생전인1998년에는 문화훈장 옥관장을 수여받았다.
①KBS가요무대 박현호
https://www.youtube.com/watch?v=sAbIIeBZ-Gg
②Arcodion선창
https://www.youtube.com/watch?v=O7JfD3YljF4&list=RDO7JfD3YljF4&start_radio=1
③나훈아
https://www.youtube.com/watch?v=Mi5NxUFaoYk

◆〈선창(船艙)〉은1941년에 가수 고운봉이 오케레코드에서 발표한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극작가 겸 작사가였던 조명암이 가사를 쓰고,천재 음악가로 유명한 김해송이 작곡했다.고운봉은〈선창〉을 발표할 당시 데뷔한 지2년이 된 신예급 가수였고,이 노래를 히트시켜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혔고,〈선창〉은 고운봉의 대표작이다.김화랑이 연출한1960년 영화《울려고 내가 왔던가》는 이 유명한 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우리나라에서는 국민적 애창가요로 남아 있고,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곡이다. 2000년 고운봉의 고향인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온천에 노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세워졌다.

◆作曲家 金海松(1910~1950)은,일제강점기때 가수 겸 대중음악 작곡가이다.평안남도 개천에서 출생,그는 훗날 충청남도公州에서 성장하였다.公州의 공주고등보통학교와平壤의 숭실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계의 천재로 불렸고,작곡은 물론 가수 활동과 편곡,연주,지휘 등을 모두 능란하게 해냈다.작곡자로서는〈연락선은 떠난다〉,〈오빠는 풍각쟁이〉,〈역마차〉,〈선창〉,등의 히트곡을 남겼다.한국전쟁 때 납북됐으며,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作詞家 趙鳴岩(1913~1993)은,일제강점기와 광복이후 활동한 충남아산 출신의詩人이자作詞家. 15세 무렵에金剛山건봉사(乾鳳寺)에 들어가서,부설 봉명학교(鳳鳴學校)에서 공부하였다.韓龍雲(1879~1944)의 추천으로1930년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고, 1935년日本早稻田大學 第二高等學院에 들어가1937년 졸업. 1938년에는 와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1941년 졸업하였다. 1930년대부터詩와 대중가요作詞등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대표작으로「바다의 교향시」,「꿈꾸는 백마강」,「선창」,「신라의 달밤」,「낙화유수」등이 있다.광복 이후 좌익경향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8년 월북하였다. 1993년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1.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은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금은 어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2.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울~어본다고 다시 오랴 사나이의 첫 순정
그~대와 둘~이서 희망에 울던 항구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2026-07-05, 16回 최정규 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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