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7월10일 정다운 우리 歌謠 『落花流水』를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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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7-10 12:30 조회2회 댓글0건본문
2026년7월10일 정다운 우리歌謠『落花流水』를 재조명한다
◆1942년 오케레코드사에서 남인수(南仁樹, 1918~1962)의 목소리로 취입 발매된 노래다.南仁樹의 대표곡〈落花流水〉이다. 1942년 음반으로 발매되어 오늘날까지 애창된다.南仁樹는1918년 경남진주에서 출생했다. 1962년 사망시까지20여년간 타고난美聲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꼬집힌 풋사랑', '감격시대', '울며 헤진 부산항', '가거라 삼팔선', '이별의 부산 정거장', '산유화', '무너진 사랑탑'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42년 발표된落花流水는越北作家 趙鳴岩이作詞하고李鳳龍이作曲하였다.목포출신 작곡가李鳳龍은 불멸의 가요『목포의 눈물』을 부른李蘭影의 오빠다.

◆落花流水의作詞家조명암(趙鳴岩, 1913-1993)은 충남아산태생,어린나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함남 석왕사에 머물면서 보통학교를 다녔다.이후出家하여 법명 운탄(雲灘)으로 금강산 건봉사에서 승려였다.당시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그의 재능을韓龍雲( 1879~1944)선생에게 전해서,韓龍雲선생이 그를 도와1930년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추천하여 공부하게 된다.그의 재능은 더욱 두각을 나타내어1934년東亞日報신춘문예에詩(동방의 태양을 쏘라)와 대중가요 작사(서울노래)가 동시에 당선된 특이한 경력을 갖게 되었다.이후作詞家로 활동하다가 그의 뛰어난 재능과 영민함을 지켜본 어느 독지가의 후원으로1936년日本와세다(早稻田)大學불문과에 입학→졸업하였고,作詞에注力하여 고향초,알뜰한 당신,선창,낙화유수,꿈꾸는 백마강,꼬집힌 풋사랑,목포는 항구,서귀포 칠십리,아주까리 등불,어머님 전상서,애수의 기타,꽃피는 내 고향과 같은 쉽게 기억되는 노래에서부터 약400여곡의 노래를 작사하였다.그러나 그는 해방이후1948년말 월북하여1993년80세로 세상을 떠났다.\

(趙鳴岩)
◆落花流水의歌詞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서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 많은 인생살이 꿈같이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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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成語낙화유수(落花流水)
낙화유수(落花流水)는‘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다.꽃잎이 물에 떠가길 바라고 물은 꽃을 싣고 흐르길 바란다는 이미지에서 남녀 간의 은근한 그리움과 사랑을 비유하는
四字成語다.또한 같은 이름으로1927년 무성영화, 1958년 한국영화가 만들어졌다.글뜻은‘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다.由來는唐나라 시인 고변(高騈)의詩‘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구절(落花流水認天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설명된다.

◆作曲家이봉룡(李鳳龍) (1914~1987)선생은,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대중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가요계의巨木이다.李鳳龍선생은1914년 전남木浦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형편이었다.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목포에서'난영축음기상회'라는 레코드점을 운영했고,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수많은 대중음악을 접하며 독학으로 음악적 소양을 쌓았다.음악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은 그의妹弟(여동생의 남편)이자 천재作曲家였던金海松을 통해서였다.천재적인 감각을 지녔던李鳳龍은 이를 바탕으로193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시작하며 천재성을 발휘하게 된다.李鳳龍선생은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세련된 가락으로 당대 최고 가수들의 히트곡을 쏟아내며 스타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목포는 항구다〉(1942,이난영 노래):
*〈낙화유수〉, (1942,남인수 노래):당대 최고의 미성이었던 가수 남인수와 콤비를 이루어 발표한 곡들로,조선 민중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1949,남인수 노래):해방 이후 분단의 아픔과 고독을 묘사한 곡으로,어지러운 정세를 민족적 서정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Kim Sisters>李鳳龍선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화려한 가족관계다.그의 집안은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이자 줄기 그 자체였다.
*여동생李蘭影(1916~1965):
*매제金海松:일제강점기 천재 작곡가,이봉룡에게 작곡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하다.
*조카 및 딸(Kim Sisters):韓國戰爭이후 매제 김해송이 납북되자,이봉룡 선생은 동생 이난영과 함께 조카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아시아 최초로美國Las Vegas에 진출한Girl Group『'Kim Sisters』*를 탄생시켰다. Kim Sisters의 멤버(숙자,애자,민자)중 막내인 이민자는 바로 이봉룡 선생의 친딸로,고모인 이난영의 수양딸로 들어가 함께 활동했다.

◆李鳳龍 作曲家의妹弟,金海松(1910~1950)은,일제강점기때 가수 겸 대중음악 작곡가이다.평안남도 개천에서 출생,그는 훗날 충청남도公州에서 성장하였다.公州의 공주고등보통학교와平壤의 숭실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계의 천재로 불렸고,작곡은 물론 가수 활동과 편곡,연주,지휘 등을 모두 능란하게 해냈다.작곡자로서는〈연락선은 떠난다〉,〈오빠는 풍각쟁이〉,〈역마차〉,〈선창〉,등의 히트곡을 남겼다.한국전쟁 때 납북됐으며,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作詞家조명암(趙鳴岩, 1913-1993)은,충남 아산태생으로 어린나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와 함남 석왕사에 머물면서 보통학교를 다녔다.그는 출가하여 법명 운탄(雲灘)으로金剛山건봉사에 승려였다.당시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그의 재능을 전해들은 한용운(韓龍雲, 1879~1944)선생이 그의 뛰어난 문장력에 감복하여1930년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추천하여 공부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매제 김해송이 월북하여,휴전후 대한민국에서는'월북/납북 작가들의 작품'이 판금조치(방송금지)되었다.이때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명곡들이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매제 김해송이 썼던 곡 중 일부를 처남인 이봉룡 선생의 이름으로 바꾸어 발표하며 살려내기도 했다. (예:고운봉의〈선창〉,장세정의〈연락선은 떠난다〉등이 한때 이봉룡 작곡으로 등록되어 불렸습니다.이봉룡 선생은1969년 무렵까지 활동을 이어가다 향년74세인1987년1월,서울에서 별세하셨다.여동생 이난영과 함께'목포가 낳은 한국 가요계의 거인'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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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장보윤-낙화유수[가요무대/Music Stage] | KBS 231127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VsdbIVxFzjc
②낙화유수–소리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8Yc_MD7PyOA
③낙화 유수-남인수(KY.2309) / KY Karaoke
https://www.youtube.com/watch?v=FwBKFZD9UsA
2026-07-10, 16回 최정규 i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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